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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원은 도대체 어떤 놈인가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시절을 소개하자니 쑥스럽습니다만 간략하게 어린 시절을 소개 하겠습니다. 저는 경상남도 창녕군 도천면 도천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 났습니다. 마을이 온통 산으로 둘러 쌓인 분지였습니다. 멀리 영산을 바라보며 호연지 기를 길렀고 마을 입구에 흐르는 낙동강 줄기를 보며 포부를 넓혀 왔습니다. 국민학교에 입학할 무렵 서울로 올라와 그때부터 서서히 성격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무뚝뚝한 아버님에게서 인내와 근면을 배웠고 활달하신 어머님에게서 재치와 웃음을 배웠 습니다.

국민학교 시절엔 사투리를 많이 썼기 때문에 친구들이 웃기다고 많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친구들과 뭉쳐 다니면서 우울 려 사는 생활태도를 배웠습니다. 특히 국민학교 4학년 때 토요일 마다 학예회를 열고 일기장에 항상 칭찬과 격려를 해 주신 선 생님 덕분에 글쓰기와 창작, 연극 등에 자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학생들로 하여금 항상 무엇인가를 자기의 손으로 만들게 하고 어울려 공연도 열게 하신 홍기화 선생님을 잊을 수 없습니다. 중학교에 가서는 저도 사춘기를 맞고 소설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읽고 가슴이 찡하게 애려오는 것을 주체할 수 없어 새벽에 골목을 걸어 다닌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 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신문반이라는 써클에 가입해 보람찬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취재 나가야 된다고 얘기하고 수업을 빼 먹고 친구들과 돌아다니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2학년 때는 신문반 반장이 되고 편집장이 되어 후배들 과 비오는 날이면 농구시합을 하고 알몸으로 수돗가에서 구두를 바가지로 대체해 샤워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패기라는 단 어 하나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던 때라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3학년이 되어 대학을 가야 겠다는 생각에 공부를 해서 고려대학 교 국어국문학과에 합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들어 와서는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우리 문화에 대한 긍지를 가져야 겠다는 생각으로 농악대라는 동아리에 들어가서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90년도 1학년 때 농활을 마치고 뒤풀이하러 낙산 수련관에 갔을 때 모래사장에서 술내기 축구를 하다가 태클에 걸려 무릎 인대가 끊어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수술을 하고 물리치료도 받고, 무엇보다도 제가 많이 움직이는 것이 좋 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운동을 열심히 해서 1년 후에는 아무 문제없이 다시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게 되었습니다. 몸이 건강해지 자 대동제 기간에 공연을 올리기 위해 한 달 동안 집에 들어가지도 않고 대본을 쓰고, 형상화 작업을 한다고 마당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92년도에는 상쇠의 책임을 맡아 1년동안 동아리를 이끌어 갔고 물론 고연제 등 거의 모든 학교행사를 기획하기도 하고 직접 콘티를 짜고 대본을 쓰고 연출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고연제 체육행사에는 연대, 고대 모든 풍물패를 이끌고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공연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동아리의 책임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사회 생활을 경험하고 싶어 휴학을 하고 노가다, 학원강사, 이벤트사 아르바이트, 써빙 등 다양하게 사회를 느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누나의 권유로 '네팔-이화 의료봉사단'에 짐꾼 및 전통문화 사절단의 자격으로 참가해 네팔에서 3주간 의료봉사 를 마치고 혼자 남아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트래킹도 하고 배낭여행을 두달간 했습니다. 그 기간동안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 며 사는 것이 가장 보람있을까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현대를 일컬어 멀티미디어 시대라고 하는데 그 정보 영상사회에서 가장 앞서 달리는 직업을 찾고 싶습니다. 몰두하면 푹 빠져버리는 저의 성격이 딱 들어맞는 그런 일 없습니까?

마당판에 쏟았던 정렬을 이제 사회에 담뿍 쏟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