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소녀 1-1

노량진 산동네에 높은 돌계단 위에 나무 대문이 열려 있다. 대문 한 귀퉁이에 기대어 앉아 먼 곳을 바라 보는 소년이 있다. 소년은 한강 한편에 동그란 파란색 천정을 하고 있는 국회의사당을 바라 본다. 그러다가 다시 한강을 보고 한강 주위에 뼈대만 남은 것 같은 건물 공사장을 본다. 햇볕이 노곤하게 조여 온다. 누나들은 학교엘 갔다. 소년은 다시 국회의사당을 바라 본다.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 보며 엄마가 이ㅣㅣ을 수영장 건물을 찾는다. 가물 가물. 촘촘히 들어 앉은 건물들 속에 수영장이 있 는 3층 건물이 보이는 것 같다. 소년은 일어 선다. 계단을 풀쩍 뛰어 내려와 달리기 시작한다. 골목길을 달려 내려오고 아파 트 수위실을 지날 땐 전속력을 낸다. 그리고 아파트를 지나쳤을 때 걷기 시작한다. 아파트 수위아저씨한테 모습이 보이면 또 자기를 달랑 들어서 그 까칠 까칠한 수염으로 마구 비벼댈 것이다. 소년은 계속 걸어 내려 온다. 큰 누나가 데리고 가서 도화 지를 사준 문방구를 지난다. 그리고 학교를 지난다. 버스가 달리고 차들이 달리는 찻길로 나온다. 찻길을 따라 계속 걷는다. 버스가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버스를 쫓아 달리고 싶다. 소년은 달린다. 계속 달린다. 사거리가 나오고 빨간 불, 파란 불. 소년은 또 달린다. 똑같이 생긴 버스가 또 지나 간다. 또 쫓아 달린다. 숨이 차다. 다시 걷는다. 길가에 빨간 문에 빨간 차들이 서 있는 소방서를 본다. 엄마와 버스를 타고 갈 때 보았던 그 소방서다. 소년은 또 달린다. 걷다가 달리다가 한강이 나왔다. 한강으로 갔다. 비스듬한 돌둑을 따라 내려가고 돌둑 밑으로 좁은 길을 다시 달리고 다리에 올라 간다. 다리를 건넌 다. 다리 틈으로 얼굴을 내밀고 강을 내려다 본다. 아 아찔하다. 다시 다리를 따라 건넌다. 여의도에 도착해서 건물을 찾는 다. 이 길이던가? 찻길을 따라 걷는다. 드디어 아파트를 찾았다. 아파트 앞쪽에 있었지. 아파트 주위로 둘러 있는 찻길을 따라 걷는다. 가게가 있고.....찾았다! 소년은 건물 계단을 뛰어 올라 간다. 그때 그 회색 철문이 맞는 것 같다. 문을 양손 으로 돌려 열고 들어 간다.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문 옆 카운터에서 고개를 내민다.
"엄마!"
소년은 고함을 질렀다. 청소하는 아줌마들이 놀랜 눈으로 쳐다 본다. 엄마가 제일 놀랜것 같다. 엄마가 카운터 밖으로 나와 쪼그려 앉아 소년의 팔을 양쪽으로ㅗㅗ 잡고 묻는다.
"우째 왔노? 누랑 왔노?"
"내 혼자 왔다."
엄마의 눈이 더 동그레 진다. 아줌마들은 수근대며 엄마 주위로 모인다.
"진짜가? 우째 왔노?"
엄마는 계속 동그란 눈으로 소년을 쳐다 본다.
"버스 쫓아서 띠 왔다."
"이누무 자슥아. 차들 씽씽 달리는데 사고 나모 우짤라꼬 그래 띠 댕기노. 울매나 위험한 줄 아나?"
엄마는 그제서야 일어나서 소년을 내려 본다.
"안 위험하다. 찻길로는 안왔다. 사람들 댕기는 길로만 띠 왔다."
아줌마들이 엄마에게 뭐라고 소근대고 웃고 그러다가 다시 놀랜 얼굴을 하다가 다시 웃고 한다. 소년은 엄마를 봐서 좋았다.
그날 소년은 엄마 옆에 앉아 있다가 어떤 아줌마를 따라 수영장을 구경하다가 아줌마가 사주는 과자도 먹었다. 엄마는 옷을 갈아 입고 소년과 같이 나왔다. 청소하는 아줌마들과 카운터에 같이 있는 아줌마와 인사를 하며 나왔다. 해가 아직 쨍쨍하게 내리쬐는데 엄마 손을 잡고 걷는 소년은 기뻤다. 그날은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혼났지만 소년은 뛰고 달리면 아무때나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엄마와 같이 걷는 길은 너무나 기뻤다.

때르릉.
선생의 말씀이 끝나고 대청소 시간이 됐다. 아이들은 모두 가방에서 준비해 온 걸레와 왁스를 꺼냈다. 여자 아이들 몇은 창문 에 달라붙어 창문을 닦고 남자 아이들은 대부분 걸상을 책상위에 엎고 교실 뒤쪽으로 죽죽 소리나게 밀었다. 칠판 앞 교단부터 책상이 들어찬 곳까지 열을 맞춰 앉아서 걸레질을 시작했다. 담임 선생은 아이들이 청소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서 반장을 불렀다 . 소년은 뛰어 갔다. 교실문 앞에서 선생은 소년에게 몇마디 하고 교무실로 내려 갔다. 소년은 들어와 아이들한테 얘기했다.
"야. 선생님이 20분 후에 올라올테니 그때까지 청소 다 해 놓으랜다. 우리 노래 부르면서 하자."
친구들 사이로 들어온 소년은 걸레를 잡고 친구들한테 무슨노래를 부를까 물어보고서 하나 둘 셋. 노래가 시작되고 노래에 맞 춰 아이들의 걸레질이 신나게 돌아간다.
푸른 바다 저 멀리 새희망이 넘실거린다
하늘높이 하늘높이 뭉게꿈이 피어난다
노래는 코난에서 은하철도를 타고 천년여왕의 커다란 눈동자로 들어 갔다. 옆반 아이둘이 걸레를 던지며 복도를 뛰어 다니며 장난을 치다가 소년의 반 문으로 도망쳐 들어오다 그만 문 앞에 있던 아이의 손을 밟았다. 밟힌 아이는 악 소리를 지르고서 아 픔을 참으려고 손을 꼭 모아쥐고 고개를 숙이고 눈도 꼭 감고 꼼작도 못했다. 손을 밟은 아이는 힐끔 쳐다보고는 또다시 장난을 치러 문을 뛰어 나갔다. 노래는 끊어 졌다. 소년은 일어서서 눈물이 막 흐를 것 같은 손밟힌 아이에게 갔다.
"괜찮냐?"
소년은 문 밖으로 나왔다. 복도 끝편에서 두 아이는 계속 서로 걸레를 던지며 장난치고 있었다.
"야 이 새끼들아! 이리와봐."
소년은 소리를 지르고 손으로 오라는 시늉을 했다. 복도가 쩌렁 쩌렁 울렸다. 복도 유리창을 청소하던 아이들이 모두 소년을 향해 눈을 돌렸다. 잠시 조용했다. 두 아이는 장난을 그치고 소년에게 다가 왔다.
"야. 너 뭔데 이새끼 저새끼 욕하냐?"
"뭐야 임마."
소년은 다가선 두 아이를 번갈아 쳐다 보고는 말했다.
"니네 ㅁ반이야? 우리 반 애 손을 밟았으면 미안하다는 사과를 해야 할 거 아냐! 빨리 사과 해."
한 아이가 소년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들었다.
"야. 씨발 손 좀 밟힌거 가지고 무슨 사과야 사과는. 장난 치다가 그럴 수도 있지 새꺄."
"사과 안 하겠다는 거냐?"
"사과 못한다."
꽈당! 퍽퍽! 순식간에 한 아이는 다리에 걸려 넘어지고 한 아이는 배를 움켜쥐고 주저 앉았다. 소년은 일어서려는 아이를 걷 어 차고 주저앉은 아이의 등을 발로 내리 찍었다. 웅성거리는 소리속에 다른 반 두 아이가 달려왔다. 그리고 소년을 둘이서 한 팔씩 잡고 떼어 냈다.
"성원아. 성원아. 참아라. 무슨 일인데? 응?"
소년은 숨을 몰아 쉬며 말했다.
"됐다. 됐어. 그만하께."
소년은 반으로 돌아왔다. 반 아이들은 조용히 소년의 눈치를 살폈다. 소년은 숨을 고르고 소리쳤다.
"야. 또 노래부르자."
아이들은 또 노래를 부르며 걸레질을 시작했다. 복도에 몇명의 아이들이 맞은 두 아이를 데리고 자기네 반으로 갔다. 다시 복 도에 교실에 재잘대는 소리, 떠드는 소리, 노래소리로 가득했다. 청소가 끝나고 선생이 집에 가도 좋다는 말과 함께 아이들은 모두 가방을 들고 신발주머니를 들고 있어섰다. 손이 밟힌 아이가 소년에게 다가와서 자기 때문에 괜한 일이 벌어졌다고 미안하 다고 했다. 소년은 미안하긴 뭘 미안하냔 말을 툭 던지고 가방을 멨다. 선생이 소년을 불렀다. 소년은 교무실로 따라 내려 갔 다. 소년은 속으로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혹시 싸움한 것을 혼내려는 건 아닐까? 소년은 내려 가며 선생의 표정을 살폈다. 심하게 혼내려는 것 같은 인상은 아니고 그렇지만 얼굴은 굳어 있었다. 소년은 가슴이 서서히 떨려오기 시작했다. 교무실 문을 들어서고 선생은 책상앞에 앉았다. 소년은 두손을 모으고 고개를 약간 숙이고 선생을 쳐다보며 책상 옆에 섰다. 선생의 말이 떨어지면 고개가 푹 떨어질 것 같은 표정으로. 선생은 얘기를 시작했다.
"학교에 육성회라는 것이 있는 거 너도 5학년이고 하니 알거다. 육성회 첫 모임이 다음주 토요일에 있으니 어머님께 여쭤 보고 육성회도 참가 하시라 그러고, 토요일날도 시간 내서 꼭 오셨음 한다고 전해라."
소년은 선생의 말을 듣는 순간 4학년때 6학년으로 같은 학교에 다니던 누나가 엄마와 싸움을 하고 누나는 담요를 뒤집어 쓰고 울고 엄마는 이마에 손을 대고 창문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던 생각이 들었다. 그때도 누나가 반장이었으니까 육성회에 가입해야 된다고 엄마한테 얘기했고, 엄마는 그런거 못하겠다고 5학년때 한번 했다가 얼마나 못 볼 꼴 보고 마음만 상했는 줄 나느냐고 말 했다. 다른 학부형들 모두 귀부인처럼 해가지고 나와서는 조금씩 돈 내서 회식이라도 하자면서 하루 이틀 벌까 말까한 돈을 같 이 내자고 그런다고...... 소년은 그 때 알고 있었다. 육성회라는 것이 학부형들이 모여서 돈을 내고 선생들 밥도 사주고 운동 회때 빵과 우유도 준다는 것을. 소년은 두려웠다. 집에 돈이 없는 것도 알았고, 매일 아버지와 함께 일나가는 엄마를 학교에 불러 또 그런 일을 당하게 하는 것이 두려웠다. 소년은 대답했다.
"엄마 토요일에 일나가셔서 못나 올 건데요. 육성회도 아마 못하실 거에요."
머리속에서 스쳐지나간 생각때문에 대답이 불쑥 나왔다. 선생은 미간을 찡그리더니 큰 소리로 얘기했다.
"이놈아. 내가 언제 너 한테 물었냐? 어머님께 가서 얘기를 전하란 말이야. 니가 어떻게 알아서 미리 그런 얘길 해! 건 방지게. 가서 이거 전해드리고 월요일날 방과후에 다시와!"
선생은 봉투를 내밀었다. 소년은 봉투를 두손으로 받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다. 혼나는데 이력이 난 소년이지만 언제나 혼나는 것은 참기 힘든 일이다. 소년은 계단을 내려와 운동장으로 나왔다. 실내화를 신발주머니에 넣고 운동화를 신고 있는데 철봉 옆에서 기다리던 친구들이 달려왔다. 네명의 아이들은 소년을 둘러싸고 소년의 얼굴을 살폈다. 물 었다.
"야. 혼났어? 맞았냐? 아까 그 새끼들이 꼰질렀냐?"
"아냐. "
"그럼 뭐야? 왜 그래?"
소년은 얘기 하기 싫었다. 친구들한테 집안 사정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말하기 싫은 문제들. 소년은 화제를 돌렸다.
"오늘은 뭐하고 노까?"
"일단 노삼이네 가서 라면 끓여 먹으면서 생각하자."
"그래? 노삼이 니네 라면 있어?"
소년은 노삼이에게 얼굴을 돌리며 물었다. 물으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옛날에도 꼭 이런 상황이 있었고 그 때도 춘근이 는 노삼이네 라면 먹으러 가자했고 자기는 노삼이한테 라면 있냐고 물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야. 성원아. 들어나 봤나 팔도라면 크로렐라."
"야 정말. 가자!"
소년은 계속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때도 팔도라면 크로렐라 같은데. 소년은 아이들을 보면서 물었다.
"야. 우리 여기서 이번처럼 똑같이 얘기한 적 있지않냐?"
노삼이가 소년을 보며 말했다.
"팔도라면 어제 산 건데?"
춘근이가 말을 거들었다.
"꼭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더라. 나도 몇번 그런 적 있었어. 엄마가 그러는데 그건 전생에 있었던 일이래."
소년은 그 대화 마저도 똑같이 경험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안갈꺼야?"
상호가 얘기했다.
"가자."
다섯명의 아이들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었다. 신발주머니를 빙빙 돌리며 책가방을 좌우로 흔들며. 교문을 향해 질주 했다.

소년-소녀 2-1
때르릉.
선생의 얘기가 끝나고 청소시간이 되었다. 소년은 학교가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참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청소시간은 더 좋았다. 크게 떠들고 장난도 치고......
아이들은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창문에 붙어 창문을 닦고 했다. 소년은 난로로 갔다. 난로를 감싸안고 있는 보호철에 걸쳐 있 는 목장갑을 꼈다. 난로위에 올려져 있던 주전자를 들어서 바닥에 내려놓고 연통을 만져 보았다. 아직 따뜻했다. 소년은 매번 하듯이 난로 밑 아궁이를 열었다. 숨을 크게 들이 쉬고 멈춘다음 쇠 갈고리로 석탄을 받치고 있던 철판을 빼냈다. 석탄이 밑 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난로 아궁이로 석탄 재가루가 휙 불어왔다. 재와 먼지 연기가 좀 가라 앉을 때까지 소년은 한발짝 물러 서 있었다. 그리고 작은 삽으로 아궁이에 집어 넣어 석탄재들을 검붉은 양동이에 담았다. 아직 불이 꺼지지 않아 발간 석탄도 몇개 있었다. 소년은 계속 석탄재를 양동이에 퍼 담았다. 깨끗이 하느라 삽으로 난로 밑둥치 긁는 소리가 여러번 날 때까지 조 그마한 재까지 긁어 냈다. 그리고 아궁이 뚜껑을 닫고 양동이를 집어 들려는데 양동이 밑이 툭 떨어지면서 석탄재들이 교실 바 닥에 쏟아졌다. 아직 꺼지지 않은 석탄에 양동이가 녹아서 떨어진 것이다. 소년은 검붉은 양동이가 불에 녹고 탄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소년은 주전자를 들고 쏟아진 석탄과 늘러붙은 양동이 위로 부었다. 치지직 소리가 나며 김이 올라왔고 계란썩는 냄새와 함께 온 교실에 연기로 가득했다.
"뭐 하는 거야? 왜그래?"
담임 선생이 앞문으로 들어 오며 소리쳤다. 선생은 소년의 옆에 다가오더니 상황을 보고서는 소년의 뺨을 때렸다. 갑자기 소 년의 앞에 불이 번쩍 했다. 소년은 휘청거리며 뒤로 넘어질 뻔 하다가 중심을 잡고 선생을 쳐다 봤다.
"다 타지도 않은 재를 양동이에 담으면 어떻해 임마. 불 날 뻔 했잖아."
선생은 인상이 잔뜩 일그러져 소년을 무섭게 노려봤다. 소년은 선생을 봤다가 녹아붙은 양동이를 봤다가 하며 작은 소리로 대 답했다.
"양동이가 탈 줄은 몰랐어요."
"모르긴 뭘 몰라 임마. 고무가 불에 탈 줄 몰랐다는 게 말이나 돼?! 어디서 변명이야 변명은."
"정말 몰랐어요. 선생님. 불에 안 타는 양동인줄 알았어요."
"이 녀석이 잘못했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번쩍! 다시 소년의 눈앞에 번개가 치고 소년은 또 쓰러질 뻔 했다. 소년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 올랐다. 이제는 선생을 바라 보지 못하고 선생의 발만 쳐다 봤다. 당연히 석탄 담는 양동이는 불에 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소년은 서러운 감정에 눈앞 이 흐려졌다. 선생은 목소리를 조금 가라 앉히고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사람이 잘못을 했으면 인정을 하고 반성하고 뉘우치 고 잘못했습니다 해야지 모른다고 핑계대고 변명이나 하고 ...... 빨리 쓸어 담아. 깨끗이. 따라 내려와서 새 양동이 받아 가! 소년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양철 양동이를 받아 와서 바닥을 삽으로 박박 긁어 담으면서도 계속 서러운 생각만 들었다. 선생님은 왜 철 양동이도 있는데 하필이면 고무양동이를 우리반에 갖다 놨을까. 정말 탈 줄은 몰랐는데......
다른 아이들 모두 돌려 보내고 소년만 남아서 청소를 하고 꾸중을 들었다. 다시는 그런 잘못 하지 말고 잘못했으면 변명따위는 하지 말라고. 소년은 입에서 맴도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다가 교실을 나왔다. 선생님 왜 우리반만 고무 양동이였어요? 계속 머리속에서만 말이 맴돌았다. 소년은 운동장으로 나왔다. 철봉 옆에 기다리던 친구들이 달려 왔다. 네명 의 아이들이 소년을 둘러싸고 물었다.
"성원아..... 또 맞았냐?"
"아냐."
아이들은 소년의 눈치만 살폈다. 소년은 자기 때문에 친구들이 어색한 분위기가 되는 것이 싫어 오히려 표정을 바꾸고 물었다.
"오늘은 뭐하고 노까?"
"일단 노삼이네 가서 라면 끓여 먹으면서 생각하자."
"그래? 노삼이 니네 라면 있어?"
소년은 노삼이에게 얼굴을 돌리며 물었다. 물으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옛날에도 꼭 이런 상황이 있었고 그 때도 춘근이 는 노삼이네 라면 먹으러 가자했고 자기는 노삼이한테 라면 있냐고 물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야. 성원아. 들어나 봤나 팔도라면 크로렐라."
"야 정말. 가자!"
소년은 계속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때도 팔도라면 크로렐라 같은데. 소년은 아이들을 보면서 물었다.
"야. 우리 여기서 이번처럼 똑같이 얘기한 적 있지않냐?"
노삼이가 소년을 보며 말했다.
"팔도라면 어제 산 건데?"
춘근이가 말을 거들었다.
"꼭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더라. 나도 몇번 그런 적 있었어. 엄마가 그러는데 그건 전생에 있었던 일이래."
소년은 그 대화 마저도 똑같이 경험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안갈꺼야?"
상호가 얘기했다.
"가자."
다섯명의 아이들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었다. 신발주머니를 빙빙 돌리며 책가방을 좌우로 흔들며. 교문을 향해 질주 했다.

소년-소녀 1-2
4교시였다. 국어시간이고 담임 선생은 아이들이 의견을 발표하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친구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친구 사이는 어떤 사이이고 어떤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냐고 선생은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이들은 별 말이 없었다. 소년은 생각했다. 서로가 발전할 수 있게 하는......같이 달리기를 할 때 앞에서 뛰고 뒤에서 쫓고 하는.....경쟁! 그래, 경쟁관계다.
소년은 손을 높이 들었다.
" 얘기해봐라. "
선생의 지명을 받고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로 경쟁하는 사이가 좋은 사이라 생각합니다. 서로 경쟁을 통해 발전하는 사이가 좋을 것 같아요."
소년은 앉았다. 뭔가 큰 일을 해낸 것 처럼 들떠서 선생의 평가를 기다렸다. 선생은 소년을 바라보면서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 다.
"어떻게 친구사이를 경쟁이라는 말로 표현하니? 경쟁은 좋지 않은 말 같지 않니? 친구 사이에 경쟁이 뭐니? 경쟁이. 친구들을 매일 이기려고 생각하고 그러니? 어릴때부터 생각을 곱게 가져야지. 그렇게 생각해선 않된다."
소년은 뺨을 맞은 것처럼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가 왜 그런 얘기를 했을까? 아이들은 내가 자기들을 적으로 생각한다고 알겠 지. 그게 아닌데. 날 약아빠진 놈으로 볼거야. 왜 내 입에서 그런 약아빠진 말이 나왔지. 소년은 그 다음 선생의 말도 아이 들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계속 고개를 숙이고 벌게진 얼굴을 들고 싶지 않았다. 4교시 수업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던지 . 소년의 머리엔 경쟁이라는 단어와 선생의 그 경멸하는 눈초리만 교차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앞에 앉아있던 춘근이와 노삼이가 뒤로 돌아서 도시락을 꺼냈다. 소년이 축 쳐져 있는 것을 두 아이는 밝 은 분위기로 바꾸려고 애써 다른 얘기를 했다. 소년도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표정을 지었고 다른 얘기들을 하면서 밥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아이들이 남자 셋, 여자 셋 편을 갈라 공기 시합을 붙었다. 소년은 최고 선수였다. 어릴적 누나들과 함께 놀았으 므로 보통 여자애들보단 훨씬 잘 했다. 여자 편에는 소녀가 있었다. 공기돌을 뿌리고, 하나 하나 던져서 집고, 둘씩 집고,... 마지막에 손등위에 올려놓고 던져 잡고...... 공기를 하면서 소년은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기분도 예전처럼 돌아왔고. 결국 남자편이 30년을 먼저 내고 이겼다. 으스대는 남자애들한테 소녀가 말했다.
"니네 눈싸움 잘 하니? 나랑 눈싸움 한번 하자."
소녀는 말하며 소년을 바라 봤다. 소년은 그래 하며 다가 앉았다. 눈싸움이 시작됐다. 소년은 소녀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봤 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여자애들은 소년의 눈을 감시했고 남자애들은 소녀의 눈을 감시했다. 아이들 입에서 둘다 정말 대단 하다라는 말이 나왔다. 소년은 꼼짝않고 소녀만 바라보았다. 소녀의 큰 눈은 굉장히 깊어 보였다. 4학년대도 같은 반이던 소 녀를 이렇게 계속 쳐다보고 앉은 것은 처음이었다. 소녀가 참 예뻐졌다는 생각을 했다. 소녀의 눈동자에 파묻혀 이런 저런 생 각을 하다가 소녀의 눈가를 봤다. 소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눈물기는 점점 많이 고였다. 그러더니 한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입술로 쪼르륵 흘러내렸다. 소년은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저렇게 촛점없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소녀의 눈에서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 언젠가 꼭 이런 상황에서 본 것 같은 저 모습. 언제였을까? 똑같은 일이 있었던 것만 같았다. 눈물이 흐르는데도 소녀는 소년의 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은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코 소녀를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은 눈을 크게 한 번 깜박이고 말했다.
"졌다...... 눈물이나 닦아라."
소년은 교실을 나왔다. 웬지 모르게 서글퍼져서 울고 싶어졌다. 소녀의 눈물을 보자 자신도 눈물이 막 쏟아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복도를 걸어 계단을 내려와 수돗가로 갔다. 세수를 했다. 소녀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학교 끝나고 놀다가도 시 간이 되면 밥하러 집에 가는 소녀의 모습. 그럴때면 보이던 그 야릇한 안타까움과 서러움의 표정이 자꾸 아른 거렸다.
수업시간에도 소년은 앞쪽에 앉아있는 소녀를 쳐다봤다. 가지런한 단발머리, 노란 반팔에 하늘색 멜빵치마, 가늘지만 강해 보 이는 손과 팔. 소년은 물끄러미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6학년 겨울이 다 되갈 무렵이었다. 아이들은 장위동 뒷산 공터에서 야구를 하기로 했다. 야구 글러브 있는 친구들 것을 모두 빌리고 공도 세네개를 준비해서 갔다. 자주 할 수 없는 놀이라서 아이들은 모두 재미있어 했고 해질 때까지 놀아야지 하는 생각 을 모두 하고 있었다. 한참을 재미나게 놀다가 소년과 한 아이가 아웃이다 아니다 하면서 말다툼이 시작됐다. 그러다가 소년이 '자꾸 우길래 새꺄'하면서 그 아이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맞은 아이가 고개를 돌려 소년을 쳐다 보았다. 눈에는 눈물이 고 여 있었고 곧 주르르 흘렀다. 순간 소년은 소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아이의 얼굴과 소녀의 얼굴이 교차되었다. 부끄러움이 솟았다. 소년은 미안하다고 그 아이한테 할하고 먼저 간다며 집으로 달렸다. 산길을 계속 달렸다.
가쁜 숨을 고르며 마당으로 들어 섰고 반지하 방문을 열었다. 방은 어둑어둑하고 눅눅했다. 소년은 구들 아랫목에 있는 담요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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