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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체취

 

 

머리속이 아련해 옵니다

밤새워 더듬은 그녀의 체취가 남아

 

씻고 싶지 않습니다.

아련한 기억도 함께 씻겨버릴것같아

 

짙은 어둠속에 반짝일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싶었습니다.

 

그러나 밤새워

봉긋한 가슴을 더듬어도 보고

얇은 입술을 적셔도 보고

눈꺼풀을 깨물어도 봤지만

 

그녀는 눈동자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사랑스러운 그녀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가끔

찬바람부는 길을 걸을때면

그녀의 체취가 느껴져

멈춰서 하늘만 바라볼수도 있습니다.

그럴땐

당신도 느껴보세요.

그녀의 체취를

 

 

그녀의 체취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두 번 울리고...... 끊었다. 용기가 없었다. 뭐라고 말을 할까? 계속 가슴이 저미어 왔다. 더 이상 이렇게 안절부절 할 수 없었다. 무작정 집을 나와서 전화를 걸었다. 꽉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저 성원인데요..

-아 예... 형 .. 오늘 일은 잘 하셨어요?

-네... 어디세요?

-저 집인데요.

-저녁 아직 안드셨죠?

-네.

-저녁 같이 먹어요.

-그럴까요?

전철역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왜이럴까? 전철 속에서 설레임과 두려움, 모든 것이 뒤섞여 휘몰아치고 있었다. 너무 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양희은의 노랫말이 머리속에서 뱅뱅 돌았다. 도무지 알 수 없는 한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전철역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네온등이 화려한 유흥지대. 대학 입학하고 처음 고등학교 친구 한놈과 해물탕에 소주를 먹덕 곳이 바로 이곳이었고, 여름에 친구들과 밤새 술먹고 얘기한 곳도 여기였다. 이렇게 하나씩 기억을 더듬으면 그곳에 씨앗을 뿌린 것처럼 그곳이 내가 일구어야 할 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화장품가게에서 경쾌한 음악도 흐르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내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비는 번데기 속에서 자기가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 지 알고 있을까?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고 있을까? 담배를 몇모금 빨았을 때 그녀가 걸어왔다. 너무 피곤해 보이는 얼굴, 발갛게 충혈된 눈, 마른 입술. 가슴이 또 저려왔다. 골목을 걸어가면서 오늘 행사 얘기, 전날 술마신 후 지하철에서 계속 자서 몇번을 갈아탔다는 얘기들을 하면서 저녁을 어떤걸로 맛있게 먹을까 생각했다.

-형 두루치기 같은거 좋아해요?

-아 좋죠.

-저기 갈까요?

그녀는 쭈꾸미 두루치기 2인분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나는 놀랐다. 그저 저녁이나 함께 먹을 까 하는 핑계로 얼굴도 보고, 그렇게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피곤해 보이는 그녀가 소주를 시켰다. 넓은 홀이 꽉 들어차고 여기저기 사람들의 말소리에 시끄러웠다. 어쩐지 그녀와 나는 그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처럼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쭈꾸미 두루치기는 보기보다 맛이 없었다. 맵고, 짜고, 그래서 소주를 다 마시고 나왔다. 자기 동네 왔으니 자기가 사겠다고 저녁값을 냈다. 나는 그럴줄 알았다고, 그럼 내가 2차를 내겠다고 했다. 그녀를 따라 걸었다. 그녀의 신발은 끈이 대강 묶여 있었다. 집을 나오면서 끈을 꼭 매는 그런 버릇은 없나보다. 그걸 버릇이라고 해야 하나. 집을 빨리 나오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끈을 꼭 매고 뛰어다닐 힘이 없었던 걸까? 시인과 촌장. 이름도 감성적이고, 나무 탁자에 나무의자에 나무 벽으로 둘러친 술집으로 들어갔다. 전에도 왔었다면서. 마주 앉아서 어릴적 얘기도 하고, 대학 졸업하고 어떻게 일을 하게 되었는지 등등 얘기를 나누며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얘기와 함께 그녀의 눈은 계속 서글픈 우물처럼 느껴졌다. 어둠 속에 물을 길으면 검은 물이 담겨있고, 그 물을 마시면 세상일을 잊고싶은 그런 우물처럼 느껴졌다. 손금이 보고 싶었다. 경주가 나를 만나면 손금을 보듯 나는 그녀의 손금 속에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나보다. 선이 길고, 뚜렷하며, 소위말하는 출세선이 한쪽은 치솟았고, 한쪽은 그렇지 않았다. 손금 얘기를 하다가 그녀가 내 손금을 보았다. 감정에 치우쳐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는 없겠다면서... 바람끼가 많다고 했다. 나는 어떻게 그런 걸 알 수 있냐고 물었더니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영업비밀이라면서. 한바탕 웃고, 간첩 리철진 얘기를 했다. 손을 잡으면 인생이 통한다는 그 장면의 얘기. 나는 인생을 알고 싶었다. 그녀가 어떻게 걸어왔는지. 그녀는 악어 얘기와

악어를 빌려서 집에 온날 어머니와 싸운 얘기를 했다. 병이 많아서 내장기관이 모두 병이 있었다는 얘기와 자주 입원했었다는 얘기도 했다. 그러면서 누구보다도 버티는 일은 자신있다는 얘기도. 그런가 보다. 아픔이 많으면 어떻게든 그걸 이겨보려는 힘도 강해지나보다. 그녀는 혼자서 술을 마시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혼자서 극장 예매를 하고, 기다리며 혼자서 술을 마시고, 또 혼자 마시다가 걸어서 집으로 향하고. 그리고 그전에 사귀던 사람 얘기도 했다. 그 사람도 당구잘치고, 탁구, 축구, 족구, 바둑 등 잡기에 능했다고, 그리고 특히 놀이기구를 잘 탔다고. 서울랜드에 가서 하루종일 놀이기구를 탄 적도 있다고. 그이도 막내여서 책임감이 없었다고...... 슬펐다. 나도 막내여서 그렇다고 맞장구를 치면서도, 그건 마치 나는 그렇지 않다는 동의를 얻고 싶은 하소연같았다. 그리고 내가 살면서 얼만큼의 책임을 지며 살아야 하는지 궁금하고 답답해졌다. 왜 그녀는 헤어졌을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얘기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싶지 않았다. 계속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소주를 네병 마시고, 술집을 12시가 넘어서 나왔다. 그녀는 계속 물었다.

-형 택시비 있죠?

-물론 있죠.

-그럼 걱정 안해도 되겠네.

내가 집까지 걸어가자고 했다.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대학교 앞에 포장마차가 보였다. 그녀는

-형 술한잔 더 할 수 있어요?

물었다. 나는 까짓거 마시자고 했다. 속은 좋지 않았지만 그이의 바램을 꺾고 싶지 않았다. 닭똥집 한접시에 소주한병을 시켜서 마셨다. 나무를 때는 난로에 붙어 앉아서 노래 얘기를 하며 조금씩 취해갔다. 그녀가 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무렵 그녀가 물었다.

-형 애인있어요?

나는 주저했다. 왜 주저하고 있는지 몰랐지만 확실히 나는 주저하고 있었다.

-네 있어요.

-경주?

대강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될 줄은 몰랐다.

-어떻게 알았어요?

-다 알죠.

내가 왜 이러는지 그녀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내 운명을 그녀는 알고있을까? 아니면 그저 예감에 빠른 것일까? 나는 양희은 노래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녀는 특히 요즘 나온 그 노래를 좋아한다면서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얘기했다.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거친 손.

한참 만에 그녀가 또 물었다.

-나 이뻐요?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아니 형의 눈에는 내가 이뻐요? 하고 묻는 듯했다. 아름답다는 얘기를 했다. 박노해의 얘기를 하면서. 내 아름이 너무 작아서 안을 수 없는 아름다움 처럼 너무 아름답다고. 소주 한병을 또 비우고, 나왔다. 그녀는 나를 택시태워서 보내려 했다. 한밤중이라 걱정도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집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녀는 금남의 집인데... 하면서 안내했다. 동네 어귀에서 책대여점에 들려 만화책을 네권 빌렸다. 책대여점을 나오면서 그녀는 저 주인아저씨 좋아해요. 너무 분위기 있어. 그렇게 혼자서 좋아 한다고 했다. 그녀는 주위의 모든 사물에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가보다 생각했다. 그런게 사랑하며 사는 게 아닐까?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꽃이 꽃이 아니듯, 그렇게 주위의 것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면서 사는 것이 사랑하는 방식이 아닐까? 허술한 나무문을 열고 조그만 자취방으로 들어갔다. 두평이나 될까? 문을 열자마자 세탁기와 싱크대가 있고, 창호지 미닫이 문을 열고 신을 벗고 방으로 들어갔다. 문들이 모두 보호할만한 힘이 있어보이지 않았다. 좁은 방의 한쪽에는 책으로 가득했고, 한쪽에는 음악테이프들이 줄서있었다. 그리고 작은 옷장위에 또 작은 카세트가 한 대 있었다. 그녀는 테이프 하나를 꺼내고 카세트에 넣었다. 그리고 커다란 쿠션에 얼굴을 묻고, 요 밑으로 작은 몸을 밀어 넣으며 그녀는 잠을 청했다. 나는 부엌불을 끄고, 방에도 불을 끄고 요 밑으로 똑같이 들었다. 팔을 뻗어서 그녀의 머리를 베어주고 꼭 안았다. 그녀의 숨소리가 가슴께로 전달되었다. 이 작은 방에서 얼마나 외로울까? 외로움을 잊으려 책을 읽고, 만화를 읽고, 음악을 들으며 때로는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손가락 끝으로 그녀의 얼굴선을 더듬어 보았다. 상처난 이마, 오똑한 코, 깊고 뚜렷한 이중, 그리고 작고 날카로운 입술, 뾰족한 턱, 큰 눈을 덮고 있

는 주름진 눈꺼풀, 도톰하게 튀어나온 광대뼈와 볼...... 눈물이 흘렀다. 서른이라는 무게를 속일 수 없는 아름다운 얼굴. 주름살이 참 아름답구나 생각했다. 눈가의 주름과 거친 손을 번갈아 가며 더듬었다. 손을 잡으면 인생이 통한다는 말을 생각하며 그녀의 주름살에서 그녀의 고뇌를 느끼고 싶었고, 그녀의 거친 손을 잡으며 내게도 그녀와 같은 굳은 삶을 달라는 기도같은 것을 하듯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잠이 들었다. 눈물이 흘러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우리는 너무 작은 방에서 있었고, 이제 막 그녀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조그맣고 추운방에 웅크리고 누워서 외로움을 달래는 그녀를 생각하면서 계속 가슴이 저려왔다. 내일은 또 모레는 또 다른 사람과 술을 마시며 그렇게 외로움과 서른의 무게를 달래며 지낼지도 모른다. 계속 주름은 늘어갈 텐데......